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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젤란의 항해부터 필리핀 독립 역사

by 자고 여행기 2023. 12. 30.

목차

    16세기 초반, 마젤란이 필리핀을 스페인의 소유로 선포하고 이후 스페인 식민지로 변모했습니다. 갤리온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발전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898년 미국과의 전쟁으로 스페인에서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미국 통치로 인해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독립운동이 전개되어 1946년 독립이 선언되었으며, 이로써 필리핀은 역사적인 여정을 거쳐 현재의 독립국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마젤란의 항해부터 필리핀 독립 역사

     

    마젤란의 항해와 필리핀의 스페인 통치

    16세기 초반,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스페인 국왕의 명령을 받아 유럽 탐험대를 이끌었습니다. 1521년 3월 31일, 마젤란은 남부 레이테 지역의 리마사와 섬에 도착하여 이 지역을 스페인 왕국의 소유로 선포하고 성자 군도로 명명했습니다. 마젤란은 항해의 기념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정상에 십자가를 세워 세계 최초의 항해를 기리고, 스페인 왕에게 이 지역의 소유를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 필리핀의 정복은 스페인의 다양한 원정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로아이사, 카봇, 사베드라, 빌라로보스 등 다양한 원정대가 파견되었으며, 특히 1564년에 진행된 레가스피 원정대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탐험 중 하나로 꼽힙니다. 레가스피 원정대는 토르나비아헤의 발견과 마닐라 갤리온 무역의 시작을 이루었습니다. 1570년, 마르틴 데 고이티가 레가스피의 지배 하에 마닐라를 정복하고, 스페인이 필리핀을 수도로 정하면서 필리핀은 스페인의 동양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그 후로 스페인의 식민지로 남아, 멕시코의 독립까지 182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필리핀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간의 중요한 교역 지점이 되었습니다. 마닐라 갤리온은 중요한 해상 무역로로 활동하며, 스페인 식민지 간의 무역을 중심으로 아세안 지역과의 교류도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리핀은 서양 문화와 아시아 문화가 만나는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19세기에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탐험과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1821년 멕시코의 독립으로 인해 스페인 식민지 제도가 붕괴하면서 필리핀은 스페인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필리핀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변화를 거쳐 현재의 독립국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의 갤리온 무역과 경제적 발전

    필리핀은 스페인의 정책에 따라 향신료 무역에서 이득을 챙기고, 중국 및 일본과의 접촉을 확대하여 기독교를 전파하며, 지역 내 무슬림과의 저항을 억누르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스페인의 정복과 식민지 시대 동안 필리핀은 갤리온 호를 통한 무역으로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며, 17세기와 18세기에는 아시아에서 중요한 무역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마닐라는 다양한 상품들을 유럽과 아시아 간에 중개하는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중국, 일본, 브루나이, 몰루카, 심지어 인도에서 생산된 은화가 이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은화는 주로 리얼 동전으로 사용되었고, 아카풀코에서 스페인 갤리온을 이용해 수송되었습니다. 이 갤리온에는 다양한 상품이 실려있었습니다. 비단, 도자기, 향신료, 칠기, 섬유 제품 등이 아카풀코를 거쳐 뉴 스페인, 페루,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초기에는 유럽인들이 아시아 상품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로 이러한 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무역은 갤리온 무역에 의존하는 군도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바스코 총독이 중요한 담배 및 농산물 수출을 통해 군도 내 수입원을 다각화시킴으로써 경제의 다양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로써 농업은 처음으로 유럽인들에게 개방되었고, 원주민들만 누릴 수 있었던 농업이 유럽인들에게도 열리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통치와 필리핀의 독립운동

    16세기 초반부터 19세기말까지 스페인의 식민지로 통치된 필리핀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중국 해적, 네덜란드군, 포르투갈 군대, 그리고 원주민 반란 등 여러 위협에 대항해야 했고, 특히 서부 민다나오와 술루족의 모로족 군도는 루손과 비사야의 해안 기독교 지역을 습격하며 남녀를 노예로 팔기도 했습니다. 1898년에는 스페인과 미국 간의 전쟁으로 필리핀의 운명이 변했습니다. 마닐라만 전투에서 미 해군이 승리하면서 필리핀은 스페인에서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고, 독립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폭력적인 반란과 비폭력적인 운동이 병행되었으며, 호세 리잘은 필리핀의 정치 개혁과 문화적 변화를 주장하여 독립 투쟁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리잘은 스페인 당국에 추방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그의 처형은 스페인 통치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898년 5월 19일, 급진적 혁명가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홍콩으로 망명한 후 미 해군 함정을 타고 홍콩에서 자진 망명한 뒤 5월 24일 필리핀으로 돌아와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필리핀군은 스페인으로부터 많은 지역을 해방시키고, 6월 12일 아기날도는 필리핀 독립을 선언하고 필리핀 제1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마닐라 전투에서 미국은 마닐라를 장악하고, 스페인과의 조약으로 필리핀은 미국에 2,000만 달러에 양도되었습니다. 필리핀은 스페인 통치에서 벗어나지만, 미국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며 10년 이상에 걸친 전쟁으로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로써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체제로 변하며 엘리트주의와 식민주의가 강화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은 미국과 함께 일본군을 저지하고, 1946년 7월 4일 마닐라 조약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여 나라의 주권을 회복했습니다. 조약은 필리핀 독립을 인정하고 미국의 주권을 포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필리핀은 독립을 찾아나가는 긴 여정 끝에 1946년 7월 4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의 주권을 되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