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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권력의 쇠퇴와 국제 전쟁의 연대기

by 자고 여행기 2023. 11. 19.

목차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의 스페인 역사를 중심으로, 국가의 쇠퇴, 유럽 강국들 간의 스페인 제국 분할, 그리고 국제 전쟁, 해상 갈등, 권력 변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7세기의 권력 쇠퇴와 18세기의 다양한 전쟁으로 인한 국가적 변화 등을 통해 스페인의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스페인 권력의 쇠퇴와 국제 전쟁의 연대기

     

    스페인의 쇠퇴와 유럽 강국들 간의 스페인 제국 분할

    17세기 동안 스페인의 권력은 계속해서 쇠퇴해 왔습니다. 이는 군사적이나 경제적 비전 없이 세계적 영향력이 사라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엄격한 가톨릭 정통, 권력의 중앙집권화, 그리고 귀족들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약해졌습니다. 코르테스(귀족 평의회), 성직자들, 그리고 이전에 왕의 고문으로 활동했던 강도들도 부패하며 영향력을 상실했습니다. 1665년에서 1700년까지 통치한 찰스 2세는 병에 걸린 약한 왕이었고, 아이가 없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내 왕이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유럽 각국은 스페인의 거대한 제국을 노리며 찰스 2세의 죽음 후 어떻게 나눌지를 계획했습니다. 1700년 찰스가 사망하면서 그의 제국 전체가 증조부인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의 필립에게 상속되었습니다. 비록 루이와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스페인 제국을 나누기 위해 다른 유럽 강국들은 각자의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주장을 지지하고, 스페인령 네덜란드, 밀라노, 롬바르디아,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 필리핀, 그리고 스페인계 미국을 찰스 곧 전쟁에서 스페인 제국의 계승으로 인식했습니다. 이 동맹은 장군 유진과 함께 성공적으로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말버러 공작 휘하의 영국군은 바바리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동맹은 마드리드를 두 번 점령했지만, 스페인 정복에 실패하고, 스페인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의 샤를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포르투갈은 참가 조건으로서 이 협정에 참여하려고 시도했고, 이 협정은 영국과 포르투갈 간의 교류를 촉진해 1703년에도 이어졌습니다.

     

    위트레흐트 조약 후의 유럽 정세

    동맹 국가들 간의 약간의 불화 이후, 1713년에 프랑스와 스페인은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다른 국가들과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했지만, 1년 후에 별도의 평화가 성립되었습니다. 앙주의 필립은 왕으로 인정받아 스페인 부르봉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평화 협정에서 스페인은 이탈리아 지방 중 롬바르디아, 밀라노, 나폴리, 사르데냐를 오스트리아에게 양도하고, 시칠리아는 스페인이 아닌 황제에게 넘어갔습니다. 스페인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는 점령되었고, 나중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동맹은 미래의 프랑스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해양강국 네덜란드와 영국 간의 전쟁이 벌어졌는데, 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로 옮겨져야 했고,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왕관이 해를 끼칠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 평화 협정은 스페인 사람들(주로 노예)과의 교역 권리를 보장하면서 결코 통일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스페인은 미국과 영국을 지켰으며, 지브롤터와 미노르카에서의 전쟁 중에도 계속 영국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탈루냐에서는 필립 왕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이 분리주의자들은 동맹 없이 진압되었고, 고대의 특권과 카탈루냐 원주민 언어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특히 시골 지역에서는 언어가 살아남았습니다.

     

    스페인 국제 전쟁, 해상 갈등, 권력의 변화

    스페인은 주로 여러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유럽의 파르마의 엘리자베스 파르네세의 야심에서 비롯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찰스 5세의 두 번째 부인이자 필립 5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는 가족을 위해 일부 스페인의 이탈리아 지방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되찾아지고, 필립과 엘리자베스의 아들 찰스가 통치자로 임명되었으며, 둘째 아들 필립은 파르마 공국을 획득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해상 전쟁으로, 영국과의 갈등이 확대되었는데 이 전쟁은 영국인 상인, 밀수업자, 해적들이 위트레흐트 조약이 허용한 범위를 초과하여 스페인 아메리카에서 교역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18세기 후반의 중요한 전쟁은 유럽 7년 전쟁이 있었는데, 이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은 프랑스와 연합하여 영국에 대항했지만, 영국이 이기면서 북미에서는 캐나다와 13개의 미국 식민지를 확보했고,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영국에 잃었지만, 쿠바와 필리핀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스페인은 프랑스와 합류하여 영국에 대한 복수를 이루었고, 독립 전쟁에서는 대영 아메리카 식민지의 편에 섰습니다. 스페인은 플로리다와 미노르카를 되찾았지만, 지브롤터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18세기 스페인에서는 부르봉 왕들이 절대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특히 찰스 3세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 중에서는 결단력 없는 자와 국내 정치적인 변화 등으로 인해 예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톨릭교와 귀족들, 성직자들은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