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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군주제 역사와 국왕 펠리페 왕실 유적지

by 자고 여행기 2023. 9. 19.

목차

    스페인 군주제의 역사의 흐름을 보며 현재 국왕인 펠리페 6세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왕실의 유적지를 살펴본다.

     

     

    스페인 군주제의 역사

    스페인의 정치 구조는 역사 전반에 걸쳐 군주제로 발전했으며, 스페인과 그 주변 지역에서 군주제가 주요한 정부 형태였다. 이 군주제는 고대 왕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로마 제국은 히스파니아를 로마의 통치 아래에 통합시켰고, 이로써 군주제적 정치 형태가 더욱더 명확해졌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서고트족과 레오비기드 왕국이 히스파니아에서 군주제를 유지하였고, 스페인-고딕 군주제의 초석을 놓았다. 무슬림 정복과 레콩키스타 재정복 과정을 통해 히스파노고딕 왕국은 발전하며 분열되었고, 여러 왕국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다양한 지방과 왕국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히스파노-무슬림 영토에서도 군주제 형태의 정부가 조직되었으며, 중세 스페인과 al-Andalus에서 군주제가 확립되었다. 1492년에는 콜럼버스의 항해로 인해 미국 대륙의 발견이 이뤄지며, 스페인 왕들은 세계적인 영토를 획득하고 국제 정치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스페인 군주들은 자신을 주권 국가의 최고 대표자로 여겼으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군주들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고, 현대 스페인은 왕정복고로 전환되어 자유의 민주적 국가가 되었다. 스페인의 왕실은 다양한 왕조를 거쳐왔고, 현재 왕 펠리페 6세는 현대 스페인의 국왕이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147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으로 최초로 스페인 통합 왕국이 탄생했다. 완전한 통일 스페인 왕국은 1516년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중세 초기 기독교 왕국에 뿌리를 둔 스페인 왕실 혈통에는 각 다양한 왕조들이 할당되었고 특정 성이 지정되었다. 오스트리아 가문, 부르봉 가문, 트라스마라 가문 등 다양한 왕가의 통치하에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현재 스페인의 왕 펠리페 6세는 가장 젊은 나이에 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고 한다. 돈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도냐 소피아 국왕의 셋째 아들로 마드리드에서 태어나서 마드리드 내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받았고 스페인 군의 다양한 부대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국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군대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육군, 해군, 공군의 총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펠리페 6세는 국내 및 국제적인 행사와 외국 방문을 통해 스페인의 이익을 증진하고, 스페인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홍보하고 전파하는 데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스페인의 주요 협회와 재단에서 명예 회장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세일링 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스페인 대표 기수로 활약하며 6위를 차지하고 올림픽 디플로마를 획득하기도 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왕실의 유산과 유적지

    스페인의 국가유산은 왕과 왕실 구성원이 귀속한 자산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목적을 가지며 이 모든 것을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문화단지 및 역사적인 건물들을 보존하면서 복원하고 환경 및 동물과 식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국가의 유산에는 8개의 왕궁과 5개의 왕실 거주지, 왕실이 설립한 수도원 및 수녀원이 10개가 있으며 역사적인 정원 관리와 미술관 등 여러 가지 역사적인 장소들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 중 하나는 마드리드 왕궁인데 궁전은 1734년 화재로 사라진 옛 알카사르 유적지 위에 지어졌다. 펠리페 5 세왕이 새 궁전 건설을 명령했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법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는 국왕 폐하의 공식 본부이지만 보통 공개적으로 방문이 가능하여 왕립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많은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 알무다이나 왕궁은 스페인의 이슬람 지배 기간 동안 섬 총독의 거주지였다. 13세기부터 기독교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부터 그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현재는 이 섬에 머무는 동안 공식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또, 라 그란하로 알려진 왕궁은 산 일데폰소라는 마을에 있는 세고비아 언덕에 위치해 있다. 1720년부터 펠리페 5세의 통치기간 동안 스페인 왕들의 여름 별장이었다. 과다라마 산의 경사면 쪽에 위치해 있어 카스티야 왕들이 좋아하는 사냥터 중 한 곳이었다. 라 그란하 궁전은 정원, 숲으로 둘러싸인 환경, 그리고 숨겨진 정원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할 정도 유사하기도 하다. 스페인 군주의 중심지로 사용되며, 건축가 필립이 예배당을 중심으로 하는 소박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어서 1728년부터 1734년 사이에 예배당이 확장되었다. 펠리페 5세가 은퇴하기 위해 구상한 장소였지만, 그의 후계자 루이 1세의 죽음으로 인해 왕좌로 돌아가야 했고, 따라서 이곳은 왕과 신하, 궁정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현재 이곳은 스페인 왕궁의 일부로, 관광객에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